최근 많은 기업이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창의성을 높인다며 ‘수평적 조직 문화’를 도입합니다. 직함 대신 ‘님’이나 ‘프로’라고 부르고, 영어 이름을 쓰며 서로 존중하자고 말하죠. 하지만 20년 넘게 현장을 누벼온 제 눈에 비친 요즘의 수평 문화는 본질은 사라진 채 ‘소꿉장난’ 같은 형식만 남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패한 수평 문화가 어떻게 조직의 전문성을 갉아먹고 위선을 낳는지 세 가지 민낯을 짚어봅니다.
1. ‘님’ 뒤에 숨은 무능과 책임 회피 진짜 수평 구조의 핵심은 호칭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결과에 대한 책임’입니다. 하지만 무늬만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전문적인 직언을 ‘인성’이나 ‘태도’ 문제로 치부하곤 합니다. 베테랑이 기술적 리스크를 경고하면, “우리 문화에 맞지 않게 너무 수직적이다”라며 입을 막아버립니다. 결국 실력 있는 전문가는 ‘분위기 깨는 사람’으로 몰려 배제되고, 서로 비위만 맞추는 무능한 이들만 남게 됩니다. 결과가 처참해도 “수평적으로 결정했으니 모두의 책임”이라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책임 증발’ 현상이 일어납니다.
2. 내부엔 ‘님’, 외부엔 ‘야’ : 선택적 평등의 위선 가장 역겨운 지점은 이른바 ‘수평 DNA’가 내부 구성원끼리만 통하는 ‘특권층의 언어’로 변질될 때입니다. 자기들끼리는 ‘프로님’이라 부르며 인격을 존중하는 척하지만, 협력업체나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릿한 협박과 막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내부의 수평 문화는 사실 ‘우리끼리 편하자’는 카르텔일 뿐, 조직 밖으로 나가는 순간 추악한 권위주의와 갑질로 돌변합니다. 이것은 문화가 아니라 기만입니다.
3. 현장이 없는 상상 속의 유토피아 수평적 구조가 실전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긴박한 현장에서는 수평적인 토론보다 전문가의 단호한 결단이 성패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없는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수평 문화는 물리적 한계를 무시합니다. 하드웨어의 특성이나 환경적 변수 같은 사실보다 내부의 ‘합의’를 우선시하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칩니다. 기술적 결함을 끝까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을 부리는 것입니다.
마치며 : 껍데기뿐인 문화는 반드시 무너진다 이름 부르기가 평등인 줄 아는 조직은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진짜 수평적인 조직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실력 있는 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밖에서도 안에서와 똑같은 예의를 갖추는 조직입니다. 지금 당신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서로 ‘님’이라 부르는 동안 거대한 빙하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닙니까? 껍데기뿐인 평등은 무능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